경영학보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사람
경영학자는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일까요.
전략, 마케팅, 재무, 생산, 조직과 같은 기업 경영의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윤석철 교수의 삶과 저서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는 경영의 방법보다 먼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사람이 아닐까.
윤석철 교수는 ‘한국의 Peter Drucker’라고 불려왔습니다. 실제로 언론에서도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두루 섭렵하고 이를 기업경영에 연결한 그의 독특한 학문 세계를 설명하며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국경제
하지만 나는 ‘한국의 Peter Drucker’라는 수식어보다 윤석철이라는 사람만의 사고방식에 더 관심이 갑니다.
독문학에서 물리학으로, 그리고 경영학으로
그의 학문적 여정부터 평범하지 않습니다.
윤석철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독문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전기공학과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훗날 독문학을 선택한 이유도, 물리학과 공학으로 옮겨간 이유도 당시 한국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경제
인문학에서 출발해 자연과학과 공학을 거쳐 경영학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경영학에는 한 분야의 언어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기업을 이야기하다가 수학과 물리학의 개념이 등장하고, 자연현상과 문학까지 넘나듭니다. 훗날 『삶의 정도』에서도 과학·수학·경제학·철학·역사·문학을 폭넓게 끌어와 삶과 경영의 문제를 설명하는 특징이 이어집니다. 매일신문
흥미롭기도 하고, 때로는 어렵습니다.
『경영학적 사고의 틀』
그의 초기 대표 저서가 『경영학적 사고의 틀』입니다.
윤석철 교수와 DBR의 기록에는 1981년 저서로 소개되어 있고, 현재 Google Books에 등록된 경문사 판본은 1982년 출간, 280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후속 저서의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책에서는 경영의 문제를 시간·공간·인간이라는 세 차원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나에게도 이 책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982년, 나는 경영학과에 들어가면서 이 책을 접했습니다.
당시 내게는 언젠가 더 넓은 세상에서 Global 경영을 해보고 싶다는 희미한 꿈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Global 경영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런 막연한 일념으로 경영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나에게 『경영학적 사고의 틀』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경영학을 막 배우기 시작했는데 책은 경영학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의 개념이 등장하고, 다른 학문의 원리로 경영의 문제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의 문장과 사례를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책도 지금 내 손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영학적 사고의 틀』이라는 제목과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강한 인상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흥미롭지만, 때로는 아리송했던 책
다른 사람들이 『경영학적 사고의 틀』에 대해 남긴 글을 다시 찾아보면서 오래된 기억도 조금씩 되살아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이클로이드(Cycloid)**입니다.
사이클로이드는 지금 다시 설명을 들어도 내게는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하며 조금 아리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경영학 책을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수학과 물리학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 책을 읽었던 다른 학자의 회고에서도 사이클로이드가 인상 깊게 언급됩니다. 다만 현재 나는 『경영학적 사고의 틀』 원본을 직접 대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책에서 윤 교수가 이를 정확히 어떤 문맥과 표현으로 설명했는지까지 단정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내게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은 잊혔지만, 생각해보게 했던 책이라는 기억은 남았습니다.
어쩌면 좋은 책이란 모든 내용을 기억하게 하는 책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각하는 방법 하나를 남겨주는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영학 밖에서 경영을 바라보다
지금 윤석철 교수의 학문적 여정을 다시 바라보면 이런 책이 나온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독문학에서 물리학으로, 다시 공학과 경영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한 분야의 언어만으로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윤 교수는 훗날 강연에서도 확률과 위험의 문제를 NASA의 의사결정 사례 등과 연결해 설명했습니다. 자연과학적 사고를 경영과 인간의 의사결정으로 가져오는 그의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납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그래서 나는 윤석철 교수의 독특함을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경영학 밖으로 나가서 다시 경영을 바라보는 것.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경영학적 사고의 틀』이라는 제목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훗날 사람들이 그를 ‘한국의 Peter Drucker’라고 부르는 것을 접했을 때도 그 표현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하면 윤석철 교수는 누군가의 한국판이라기보다, 윤석철만의 ‘사고의 틀’을 만들어간 학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직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사이클로이드라는 말을 생각해보니 묘하게 내 삶과도 겹쳐 보입니다.
내 경력 역시 직선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업이라는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Industry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직선적인 경력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곳에서 나는 기업 안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과 제도, 사회를 경험했고 다른 시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 삶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해보고 싶습니다.
직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속도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윤석철 교수의 말이 아닙니다.
사이클로이드라는 개념을 40여 년이 지나 내가 살아온 삶에 비추어 다시 바라본 나의 생각입니다.
경영에서 삶으로
윤석철 교수의 탐구는 『경영학적 사고의 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1년 『경영학적 사고의 틀』, 1991년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 2001년 『경영학의 진리체계』, 그리고 2011년 『삶의 정도』로 이어집니다. 윤 교수 자신도 이 저술의 흐름을 10년 주기로 소개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의 질문이 점점 경영에서 삶으로 확장되어 간다는 점입니다.
『삶의 정도』에서도 윤석철 교수 특유의 언어가 등장합니다.
‘목적함수’, ‘수단매체’, 그리고 ‘우회축적’.
삶을 이야기하는데도 여전히 공학과 수학의 언어가 보입니다. 윤 교수는 내일의 목적을 위해 오늘 필요한 수단을 축적하는 선택을 ‘우회축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어쩌면 그래서 『삶의 정도』 역시 쉽게 읽고 지나가는 책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서둘러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삶의 정도』를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윤석철 교수는 무엇을 보았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하나씩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40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윤석철
1982년 『경영학적 사고의 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제 막 경영학의 문을 열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때는 Global 경영이라는 말조차 내게는 희미한 꿈에 가까웠습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었고, 사람을 만났고, 여러 분야의 일을 경험했습니다. 판단하고 실행하면서 성공도 실패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나 다시 윤석철 교수의 책을 바라봅니다.
책의 세부 내용은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남아 있습니다.
생각하는 법을 생각하게 했던 사람.
그래서 나에게 윤석철 교수는 단순히 ‘한국의 Peter Drucker’라는 이름만으로 설명되는 학자는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 경영학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남긴 사람입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보다 먼저,
나는 어떤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어쩌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윤석철 교수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