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곰이와 걸으며 만난 가을 하늘, 오리 그리고 토실토실한 잉어들
가을이 왔습니다.
하늘은 높아지고, 햇빛은 한여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이런 날에는 집에 있기보다 그냥 걷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달곰이와 함께 양재천으로 나갔습니다.

달곰이도 가을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집에 있을 때보다는 표정이 훨씬 살아납니다.
사람에게 산책이 필요하듯 강아지에게도 밖에서 맡는 냄새와 바람은 또 다른 세상인가 봅니다.
양재천을 걷다 보니 억새가 제법 올라왔습니다.

높은 빌딩 바로 옆으로 억새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천천히 걷습니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조금만 아래로 내려오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금 더 걸으니 오리들도 보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든 말든 자기들끼리 유유히 헤엄칩니다.
급할 것도 없어 보이고 경쟁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양재천에서 가장 눈에 띈 친구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잉어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 토실토실합니다.
가을을 두고 옛날부터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고 했는데….
양재천에서는 말보다 잉어가 먼저 살이 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로운 사자성어 하나를 만들어 봅니다.
천고잉비(天高鯉肥)
하늘은 높고 잉어는 살찐다. ㅋㅋ
물속을 가득 메운 잉어들을 보고 있으니 이 말이 제법 그럴듯합니다.
다시 걷습니다.

커다란 다리 아래를 지나는데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늦은 오후 햇빛이 꽤 근사합니다.
평소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는 그냥 지나쳐 버리는 다리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서 바라보니 전혀 다른 풍경이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입니다.

한쪽에는 억새와 나무가 있고,
물에는 오리와 잉어가 살고,
그 너머에는 아파트와 빌딩이 있고,
멀리 초고층 빌딩까지 보입니다.
자연과 도시가 한 화면 안에 함께 있습니다.
오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달곰이와 걸었고,
오리를 만났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잉어들을 구경했고,
가을 하늘을 몇 번 올려다봤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평범한 시간이 꽤 좋은 시간입니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가는 곳도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Value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없던 것을 반드시 새로 만들어야만 Value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늘 있던 것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도 새로운 Value가 아닐까요.
오늘 제가 양재천에서 발견한 Value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높아진 하늘, 달곰이와 걷는 시간, 그리고 천고잉비.
가을이 조금 더 깊어지기 전에
달곰이와 한 번 더 걸어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