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그림이 되다

이경희 화가의 「빛을 머금은 선율」을 감상하며

음악은 귀로 듣고, 그림은 눈으로 본다.

그런데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난 10월 15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이경희 화가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는 2026년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열렸으며, 전시장에는 음악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에는 바이올린과 첼로, 관악기들이 등장했다. 악보와 음표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악기 그림과는 조금 달랐다.

악기들은 사실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색채와 선들이 악기의 형태와 어우러져 있었고, 때로는 악기의 일부가 빛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작품의 제목은 「빛을 머금은 선율」.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빛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선율은 귀로 듣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감각의 세계가 하나의 화폭에서 만난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음악의 선율을 색채로 표현하다

바이올린은 참 아름다운 악기다.

작은 몸체에서 나오는 소리가 때로는 부드럽고 애절하며, 때로는 격정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경희 화가의 작품에는 이러한 바이올린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림 속 바이올린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악기의 형태가 푸른색과 보라색, 붉은색과 노란색 속에 녹아들어 있다. 악보는 화면 곳곳에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듯하다.

마치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음악은 소리로 존재한다.

소리가 사라지면 음악도 사라진다. 물론 그 음악이 남긴 감동과 기억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의 선율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순간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음악의 감동을 하나의 공간에 붙잡아 두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이경희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 그림은 공간의 예술

음악과 미술은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음악은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하나의 음이 울리고, 그다음 음이 이어지면서 선율이 만들어진다. 여러 음이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고, 리듬과 강약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반면 그림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한눈에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색채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바라보면 악기의 형태가 보이고, 그다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악보와 작은 선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그림 속을 천천히 여행하게 된다.

음악을 들을 때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멜로디가 들리지만, 여러 번 듣다 보면 그동안 놓쳤던 악기의 소리와 화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음악과 미술은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감상하는 과정에서는 닮은 점이 많다.

음악에 리듬과 화음이 있다면, 그림에는 선과 색채의 조화가 있다.

이경희 화가의 작품은 이 두 세계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듯했다.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의 눈으로

나는 전문 음악가는 아니다.

나이가 들어 기타를 배우고,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며 음악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는 아마추어다.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같은 곡이라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는 것을 경험한다.

같은 음을 연주해도 강약과 속도, 음과 음 사이의 연결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때로는 음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보다 그 음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음악은 개별적인 음들의 단순한 모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음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야 비로소 음악이 된다.

그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나의 색이 아름답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색이 만나고, 선과 면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경희 화가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기타를 연주할 때 느꼈던 이러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바이올린의 형태가 여러 색채와 어우러지고, 악보가 화면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습에서 음악의 화음과 같은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빛을 머금은 선율

이번 전시에서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작품의 제목이었다.

‘빛을 머금은 선율’.

선율은 소리인데 어떻게 빛을 머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서로 다른 감각을 빌려 감정을 표현하곤 한다.

따뜻한 목소리, 밝은 음악, 부드러운 색채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목소리에 온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이 실제로 빛을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들이 전하는 느낌을 이해한다.

예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음악의 선율도 색채와 형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희 화가의 작품에는 차분한 푸른색과 보라색이 많이 등장한다.

그 사이로 노란색과 붉은색이 강렬하게 나타난다.

나는 그 색채의 대비에서 음악의 강약을 떠올렸다.

조용하게 흐르던 선율이 어느 순간 힘차게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클래식 음악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오래전에 들었던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같은 그림 앞에서도 서로 다른 음악을 듣는 셈이다.

그림 속에서 들려온 음악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예술의 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은 소리로 감정을 전달하고, 미술은 색채와 형태로 감정을 전달한다.

문학은 언어로, 무용은 몸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표현하는 수단은 다르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다가간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

우리가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음악이 우리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떤 감정과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화폭에 담지만,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 작품은 작가의 손에서 완성되지만, 감상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경희 화가의 작품 앞에서 나는 음악을 생각했고, 내가 연주했던 기타의 선율을 떠올렸다.

그림 속 바이올린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는 듯했다.

음악은 시간 속에 흐르고, 그림은 공간 속에 머문다.

이경희 화가는 흐르는 음악을 화폭에 머물게 했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 없는 선율을 들었다.


전시 정보

이경희 개인전
2026년 10월 14일 ~ 10월 20일
한국미술관 2층, 서울 인사동
작품: 「빛을 머금은 선율」 외

글·사진 | J H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