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NOT SHORT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Reflections on Seneca — Time, Fate and Path

Nearly two thousand years have passed since Seneca wrote about time, fate, and the human condition. Yet his thoughts still speak to us with remarkable clarity.

What is time?
How should we face fate?
And how do we choose our path?

After many years of working with people and leading businesses across the world, his words brought me back to one simple question.

Where am I now?


최근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 — LIFE IS NOT SHORT』를 읽었다.

이 책은 세네카의 한 작품을 그대로 옮긴 책이라기보다 《삶의 짧음에 대하여》를 비롯해 《마음의 평정에 대하여》, 《여가에 대하여》, 《행복한 삶에 대하여》, 《섭리에 대하여》 등 그의 대화편에서 핵심적인 사유를 골라 오늘의 언어로 재구성한 책이다.

2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한 철학자의 생각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렇게 생생하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 놀라웠다.

모든 장에 소중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책을 덮고 나니 내게 특별히 세 단어가 남았다.

TIME · FATE · PATH

시간, 운명, 그리고 길.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TIME — 시간

세네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현재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바라보며 지금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나는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가.

그렇게 과거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현재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FATE — 운명

오랜 시간 경영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업은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좋은 전략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도 시장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찾아온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선택해서 이루어진 일도 있었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내 앞에 놓인 일들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와 만남도 있었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운명(Fate)​이라고 부른다.

나는 운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명에 모든 것을 맡겨놓을 수도 없다.

배우고, 준비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기회가 찾아와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기회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갈고닦아야 운명도 따라온다.


PATH — 길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생각이 있다.

길을 선택할 때 그 길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있는지를 볼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걸어갔다고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았다고 반드시 위험한 길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발자국의 수가 아니라 Direction, 방향​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양떼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그 방향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사색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것.

나는 그것 역시 삶에서 필요한 Entrepreneurship이라고 생각한다.


무의도의 별

무의도의 하루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마침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로 접어드는 때였다.

가을이 가까워져서였을까.
하늘은 한층 높아 보였고 공기는 맑았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많은 별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깊은 산골이나 사막처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무심코 바라보던 하늘과는 분명 달랐다.

낮에 읽었던 세네카의 문장들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였는지 그날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배웠던 카시오페이아자리(Cassiopeia)​를 찾아보고, 북두칠성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별들을 따라 북극성의 위치도 찾아보았다.

별 하나를 찾고 또 다른 별을 찾아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사막이라면 어떨까?

나에게는 그저 아름답게 보이는 저 별들이 끝없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에게 북극성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방향(Direction)​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정표가 된다.

같은 별이다.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누군가는 그 별을 바라보며 길을 찾는다.


별처럼 찾아오는 사람

그 순간 사람과의 인연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귀인(貴人)​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귀인은 언제나 내가 애써 찾던 곳에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에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만남에서,
뜻밖의 인연으로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저 별들처럼.

별은 그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그 별을 발견했을 뿐이다.

인연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삶의 귀인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미처 바라보지 않았던 곳에 이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길(Path) 또한 그런 것인지 모른다.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막에서는 수많은 발자국보다 때로는 하늘의 별 하나가 더 정확한 방향을 알려준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때로는 멈추어 고개를 들어 내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삶은 사람과 함께 걷는 길

삶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교감하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면서 나 역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함께 성취하고,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경영의 성과나 숫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남아 있다.

고마운 사람도 있고, 그리운 사람도 있고,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모든 만남과 인연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삶이란 결국 사람들과 교감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색, 그리고 정진

세네카의 글을 읽으며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삶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시련도 찾아오고, 뜻하지 않은 도전도 찾아온다.

그러나 시련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것을 불행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신이 주는 사랑은 편안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도전을 허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배우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정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서도 안 된다.

때로는 멈추어 사색해야 한다.

방향을 잃은 채 열심히 걷는다면 오히려 내가 가고자 했던 곳에서 더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 단어를 함께 생각한다.

Reflection & Discipline.
사색하고, 정진한다.


다시,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날 무의도의 밤하늘 아래에서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을 생각했다.

내가 선택해서 걸어온 길도 있었고, 운명처럼 들어서게 된 길도 있었다.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어떤 인연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세네카가 남긴 생각이 2천 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다면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밤하늘의 별은 말이 없다.

그러나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그 말없는 별 하나가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사람도, 인연도, 기회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가끔은 멈추어 고개를 들어야 한다.

별을 바라보고,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확인한다.

그리고 방향을 찾았다면 다시 걷는다.

꾸준히, 묵묵히, 나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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