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에서 시작되는 가능성 — 수단매체의 세계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는 오래전부터 내게 여러 화두를 던져준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단매체’와 ‘목적함수’, 그리고 ‘너 살고 나 살고’라는 생각은 이후 내 사업의 철학이 되었다.
지금 다시 이 책을 펼쳐보는 이유는 내용을 요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사람과 조직 속에서 일했고, 이제 직접 사업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 윤석철 교수가 던졌던 질문들이 내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다.
『삶의 정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수단매체의 세계’, 제2부 ‘목적함수의 세계’, 그리고 제3부 ‘수단매체와 목적함수의 결합’이다. 책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세 가지 화두를 따라가며 사람과 일, Leadership과 Entrepreneurship, 그리고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가치들을 세 편에 걸쳐 생각해보려 한다.
세 편을 마친 뒤에는 책을 잠시 내려놓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생각들을 다시 나의 언어로 정리해보고 싶다.
첫 번째 이야기는 ‘수단매체의 세계’다.
인간은 유한하다
윤석철 교수는 인간의 능력이 유한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인간을 작게 보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왔는지를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인간은 맨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다. 낚싯대가 있으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지렛대를 사용하면 자신의 힘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움직일 수 있다.
윤 교수는 인간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러한 것들을 ‘수단매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수단매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계나 도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수단매체의 세계를 훨씬 넓게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수단매체가 있는가 하면, 지식과 지혜 같은 정신적 수단매체도 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얻는 신뢰와 존경, 인간적인 매력과 같은 사회적 수단매체도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인간의 한계’를 조금 더 넓게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한계란 단지 힘이 부족하고 지식이 부족하다는 의미일까?
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 중 하나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장도 혼자 될 수 없다
아주 작은 예를 하나 생각해보자.
학교에서 반장이 되는 것조차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반장이 되고 싶고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도 친구들이 나를 선택해주지 않으면 반장이 될 수 없다.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에 오르고 조직의 책임자가 되는 데에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신의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나를 믿어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기회를 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일한 동료와 직원들이 있었고,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준 수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공하고 나면 사람은 가끔 그 순서를 거꾸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느 순간 내가 잘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따랐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교만은 여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겸손을 이렇게 생각해보고 싶다.
겸손은 나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취 속에 다른 사람의 몫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은 아니다.
내가 한 일을 인정하되, 그 안에 다른 사람의 노력과 선택과 신뢰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
나는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사업을 해보니 사람이 달리 보인다
요즘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경험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업에서 일했고 경영도 해왔다. 그러나 지금 직접 사업을 하면서 돌아보니, 영업이라는 세계는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는 셈이다.
제품 하나를 고객에게 설명하고, 한 사람의 마음을 얻고, 거절을 견디고, 다시 찾아가고, 그것을 실제 구매와 사업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성공한 사업가를 보면 그 사람이 이룬 결과가 먼저 보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까.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했을까. 얼마나 기다렸을까. 몇 번이나 계획을 바꾸고 다시 시작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성공한 사업가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너무 쉽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
자리가 달라지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삶의 정도』를 설명하는 강의에서도 타인의 필요와 아픔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오만에서 벗어나야 하고, 보고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과정인지 모른다.
CEO의 자리에서 바라보던 시장과 직접 고객 한 사람을 만나 바라보는 시장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보는 눈도 바꾸어 놓는다.

Leadership에서 중요한 두 단어, ‘with people’
나는 Leadership을 이렇게 정의해왔다.
Leadership is working with people to create value.
사람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
이 문장에서 요즘 내가 다시 보게 되는 것은 with people이라는 두 단어다.
Leadership은 혼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좋은 리더라면 자신이 성공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이 성장하고 성공하는 것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키운 사람이 나보다 더 인정받을 때, 함께했던 사람이 더 큰 기회를 얻었을 때 진심으로 박수를 칠 수 있는가.
나는 이것도 Leadership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사람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고 자신의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회사는 사람의 능력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사람 역시 조직이 가진 자원과 기회, 관계와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넓힌다.
따라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한 일방적인 관계라기보다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윤석철 교수가 말한 사회적 수단매체라는 개념이 내게 더 깊게 다가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돈이나 기계보다 훨씬 강력하다.
‘너 살고 나 살고’
『삶의 정도』에서 내가 특히 중요하게 받아들인 생각이 있다.
‘너 살고 나 살고.’
자연에는 이런 관계가 많다.
꽃과 벌을 생각해보면 쉽다. 꽃은 벌에게 꿀을 제공하고 벌은 꽃가루를 옮긴다.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살아간다.
윤석철 교수는 이러한 관계를 생존의 중요한 원리로 설명한다. 붙여넣은 텍스트(1)
나는 이 생각을 오래 마음에 두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사업의 철학으로도 이어졌다.
사업이라고 해서 내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고객도 살아야 하고, 사업을 함께하는 사람도 살아야 하고, 회사도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서 얼마를 더 가져가는가만이 아니다.
서로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줄 수 있는가이다.
윤 교수의 생존부등식에 관한 설명에서도 기업이 단순히 가격과 비용의 차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강조된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더 분명하게 느끼는 것도 이것이다.
제품을 팔고 싶다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고객은 내가 팔고 싶다는 이유로 제품을 사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 간단한 사실이 실제 사업에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수단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수단매체를 생각하다 보면 또 다른 질문을 만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수단을 만들어왔다.
집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다. 돈도 그렇고, 지식과 기술도 그렇다.
그런데 수단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정말 더 자유로워졌을까?
세네카를 읽으며 내게 오래 남았던 문제의식과도 연결된다.
내가 집을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순간 집이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집은 인간에게 편안하게 살아갈 공간을 제공하는 수단이다.
자동차는 이동을 위한 수단이고 돈은 필요한 것을 교환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다.
그런데 더 좋은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많은 돈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 삶의 중심이 되어버리면 수단과 목적의 위치가 바뀐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수단 때문에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시간과 자유를 내어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가진 것을 사용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수단매체의 문제를 넘어 결국 다음에 이야기할 목적함수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계는 장애물일까, 가능성의 출발점일까
우리는 보통 한계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돈이 부족하다.
사람이 부족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경험이 부족하다.
능력이 부족하다.
사업을 해보면 이런 한계를 거의 매일 만난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아무런 한계가 없었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계를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안 된다.”
또 다른 사람은 묻는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는 이 두 번째 질문에서 Entrepreneurship을 본다.
내가 생각하는 Entrepreneurship은 단순히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 아니다.
Discovering value, developing it, and making it happen.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마침내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계는 Entrepreneurship을 막는 벽인 동시에 Entrepreneurship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는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러므로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다.
사람을 보고, 가능성을 보고, 직접 해본다
『삶의 정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세 가지 개념이 나온다.
감수성, 상상력, 탐색시행이다.
나는 이 세 가지가 오늘날 Entrepreneurship을 생각하는 데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먼저 감수성이다.
고객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무엇이 불편한가.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직접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가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상상력이다.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을 보는 능력이다.
그러나 사업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실용적인 상상력이다. 영상에서도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러한 실용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세 번째는 탐색시행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답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게 해보고, 반응을 보고, 잘못되면 수정하고, 가능성이 보이면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이다. 영상에서는 작은 시도를 통해 패턴을 보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나는 이것을 나의 언어로 이렇게 생각해본다.
사람을 본다.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직접 해본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Entrepreneurship의 과정과도 닮아 있다.
Discovering value.
Developing it.
Making it happen.
가치는 책상 위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 속에서 발견되고, 상상력을 통해 발전하며, 행동을 통해 현실이 된다.
수단이 강력해질수록 사람은 더 중요해진다
오늘날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해졌다.
AI 역시 그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AI 자체를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AI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결국 질문은 인간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누가 그것을 사용하는가.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사용하는가.
누구와 함께 사용하는가.
그리고 어떤 가치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가.
강력한 수단을 가졌다고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AI를 사용한다고 Entrepreneurship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단이 강력해질수록 사람과 목적에 대한 질문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다시 인간의 한계로 돌아오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인간은 유한하다.
처음에는 이 말이 인간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삶의 정도』를 따라 생각하다 보니 나는 오히려 반대로 보게 된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수단을 만들었다.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했다.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배웠다.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시도를 반복했다.
그리고 기존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확장해왔다.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는 반드시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 협력하게 하고, 상상하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나는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지식도, 경험도, 기회도, 관계도 수많은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것을 기억할 때 겸손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성공에도 박수를 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부터 진정한 Leadership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Leadership is working with people to create value.
그리고 한계를 마주했을 때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발견하고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
나는 그것을 Entrepreneurship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오면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수단을 만들었다.
사람과 협력하고, 지식을 축적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제는 AI라는 놀라운 수단까지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능력이 커질수록 우리의 삶도 반드시 좋아지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수단은 방향을 결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도 어디로 갈 것인지는 자동차가 정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제1부 ‘수단매체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이것을 무엇을 위해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위해 할 것인가.
이 질문에서 『삶의 정도』의 두 번째 이야기, ‘목적함수의 세계’가 시작된다.
다음 이야기
『삶의 정도』를 다시 생각하다 ② — 목적함수의 세계
수단이 우리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면, 목적은 그 가능성이 향해야 할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사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다음 글에서는 윤석철 교수가 말하는 ‘목적함수’라는 화두에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